나나무스쿠리의 음악 두곡을 올려봅니다. 요즈음 포스팅하기도 귀찮아서 본문에 나나무스쿠리에 대한 프로필 조차 적기가 그렇네요. 음악만 두곡 올려봅니다. 그리고 태터툴즈에서 워드프레스로 바꿀까하는 갈등이 생겨 더 그런가 봅니다.
태터툴즈가 글쓰기가 편한 잇점이 있는데 사실 사용하는 구조도 워드프레스에 비하여 굉장히 쉬운편인데 버젼업이 되면서 기존에 사용할수 있던 것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지금 고민 중 입니다. 현재 이 워드프레스는 그 갈등 와중에 일단 생성을 해서 ^^*
리치 에디터를 사용하지 않고 포스팅을 하니 조금은 불편하네요. 일단 아이프레임이 들어가는 포스팅 작업은 다음 동영상과 이메이징 갤러리가 옮기기가 끝난 상태이니 다시 리치 에디터를 활성화해야 할까봅니다.
일단은 더 고민하다 옮기는 문제를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우선은 xhtml 1.1에서 아이프레임이 제외 된 상태라 워드프레스의 향방도 알길이 없고, 지금은 워드프레스 2.0.3인가 최신 버젼인데 리치 에디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왠만한 기본적인 태그는 적용이 되는 듯 합니다. 현재는 본문의 내용만 xml로 복원을 한 상태라 댓글이라던지 방명록은 가져오지 못한 상태이며 그리고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라 워드프레스에 방명록을 달지 않았네요. 태터툴즈의 경우 방명록이 기본 내장되어 있지만 워드프레스의 경우 ^^* 사용자가 생성을 해야 하는데 결정을 안한 상태라 ^^*
우선은 태터툴즈의 1.0.5로 버티기를 해야 할지 ^^* 머리 아픈건 딱 질색이라 나중에 결정하려고 일단 워드프레스도 만들어 봤습니다.
현재는 워드프레스에서 포스팅을 먼저하고 태터로 대충 옮겨서 적어 봅니다.
태터툴즈에서 워드프레스로 옮기는 작업은 다 끝난 상태인데 아직 향방을 결정을 못해서 ^^*
워드프레스의 주소는 http://hooya.dobcast.com/wp 입니다.
'Music/PoP'에 해당되는 글 10건
- 2006.06.23 Nana Mouskouri의 노래 두곡
- 2006.05.31 Lynard Skynard의 Free Bird(Live)
- 2006.05.15 Sweet의 Love is Like Oxygen
- 2006.05.08 Journey의 Open Arms
- 2006.05.05 Chuck Mangione의 Children Of Sanchez
- 2006.05.03 Eagles의 Hotel California ( Live )
- 2006.04.22 Rose의 A Taste Of Neptune
- 2006.04.20 Westlife의 Seasons In The Sun
- 2006.04.20 Shawn Philips의 The Ballad Of Casey Deiss
- 2006.04.20 Beatles의 Yesterday
오늘 폴더를 정리하다 예전에 무척이나 듣던 음악이 보이기에 한번 올려본다. 가장 대표적인 서던 록(Southern Rock)그룹 Lynard Skynard의 Free Bird라는 곡이다. 1965년 플로리다에 있는 잭슨빌 고등학교 출신 동창생들로 구성된 밴드이며 1977년 전세 비행기 추락으로 팀이 해체되는 계기가 된 불운의 그룹이자 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다.
특히 200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룹이기도 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는 첫 앨범을 발표한 지 25년이 지나야만 우선 선정 자격이 주어지며, 전 세계 700여 명의 투표인단에 의해 최종 결정된다고 한다. 200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자들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레너드 스키너드(Lynard Skynard)를 올해의 헌액 대상자로 최종 결정하였다고 발표되었으며 그 외에도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뉴웨이브 그룹 블론디(Blondie), A&M의 창립자인 허프 앨버트(Herp Albert)와 제리 모스(Jerry Moss)도 포함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200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룹이기도 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는 첫 앨범을 발표한 지 25년이 지나야만 우선 선정 자격이 주어지며, 전 세계 700여 명의 투표인단에 의해 최종 결정된다고 한다. 200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자들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레너드 스키너드(Lynard Skynard)를 올해의 헌액 대상자로 최종 결정하였다고 발표되었으며 그 외에도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뉴웨이브 그룹 블론디(Blondie), A&M의 창립자인 허프 앨버트(Herp Albert)와 제리 모스(Jerry Moss)도 포함이 되었다고 한다.
Sweet의 Love is Like Oxygen
아티스트: Sweet
앨범명 : Level Headed
발매일 : 1978
쟝르 : Rock
음반사 : Capitol

Silver Bird 3:26
Dream On 2:52
Fountain 4:14
Love Is Like Oxygen 6:51
Anthem No. I (Lady of the Lake) 4:10
Strong Love 3:26
Lettres d'Amour 3:30
Anthem No. II 1:01
Air on 'A' Tape Loop 5:58
1968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Sweet는 데뷔 초기 Brian Connolly (vocals), Mick Tucker (vocals, drums), Frank Torpey (guitar) Steve Priest (bass)로 출발했다. 초창기 4개의 싱글이 실패를 하면서 기타를 맡았던
사실 Sweet가 이름을 알린 것은 강렬한 사운드의 브리티쉬록이 아닌 버블검 사운드계열의 팝이였다. 비틀즈도 발굴했었던 닉키친, 마이크 채프먼과 손을 잡은 이후 73년 "Blockbuster"로 영국차트 1위에 올랐고, 미국에서도 "Little Willy"가 3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1974년부터 음악성을 하드록으로 바꾸기로 한 Sweet는
이어 나온 "Sweet Fanny Adams"은 이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27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싱글히트조차 없었다. 그후 1975년 발표한 앨범 "Desolation Boulevard"에서 "Fox On the Run"가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인기를 얻으며 부활했다. 앨범은 25위에 올랐고 이어 당시로서는 상당한 스피드를 자랑한 "Ballroom Blitz"도 5위에 랭크 되었으며, 1978년 앨범 완성도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Level Headed"가 발표되었고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는 "Love Is Like Oxygen"이 8위에 올랐다.
1979년 앨범 "Cut Above The Rest"를 발표했으나 많은 사랑을 받지못한채 1982년에 해체되었다. 그후 1985년 멤버들은 다시 모여 자신들의 히트곡을 댄스 메들리로 만든 "It's the Sweet Mix"를 영국에서 내놓아 잠시 인기를 얻었고 1989년에는 라이브앨범 "London's Marquee Club"이 나왔다.
1980년대 이후의 미국 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저니가 꼭 필요하다. 초고 음역의 보컬이 고저가 심한 화려한 멜로다라인을 구사하고, 때로는 두텁게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의 뮤트 사운드로 승부하고, 때로는 멜로디 감이 우수한 기타 솔로로 곡을 구성하는 '멜로딕 헤비메탈'을 그렇게도 일찍 만들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미국 록의 토양이 그렇게도 넓었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들의 "Open Arms", "Separate Ways(Worlds Apart)" 등의 곡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이 많습니다. 록그룹 저니(Journey)는 1980년대 스틱스, 토토, 알이오 스피드웨곤 등과 더불어 국내외 음악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추억의 팀이었습니다. 팀 해산과 재결성을 거치면서 일부 멤버 교체의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왕성한 순회공연을 통해 전성기 못지않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산타나에 가담하며 프로의 길을 접어든 닐 숀(Neal Schon, 기타), 역시 산타나 출신으로 건반을 담당한 그렉 롤리(Greg Rolie), 초기 스티브 밀러 밴드에서 활동한 로스 밸로리(Ross Valory, 베이스)를 중심으로 결성된 저니는 1973년 12월 31일, 샌프란시스코 윈터랜드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행보를 걷게 된다. 1981년 공개된 〈Escape〉는 "Open Arms"(애니메이션 "Heavy Metal" 사운드트랙에도 수록), "Don't Stop Believin", "Who's Crying Now", "Still They Ride"등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1년 이상 히트 차트를 장식하게 된다. "Faithfully" 나 "Wheel in the Sky "같은 곡들 역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밴드를 결성한 지 벌써 30여 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저니는 현재 데뷔 이후 황금기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멤버들은 그대로 이번 공연에 임하고 있다. 기타리스트 닐 숀과 조나단 케인, 그리고 로스 밸로리가 건재한 가운데 스티브 페리가 조금도 부럽지 않은 목소리의 스티브 오그리가 보컬리스트로 새로이 영입되었다. 그리고 세션드러머로는 '드럼 교과서'로 칭송받고 있는 딘 카스트로노보가 가세하여 완벽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1년 4월 발표된 신보의 투어를 재공성한 이공연실황은 태로는 추억 속에 자기게 하며, 때로는 노장들의 건재함에 감탄하게 만든다.
"Children Of Sanchez"앨범 중에 Children Of Sanchez Overture
척크 맨지온이 "산체스의 어린이들" 앨범을 위해 작곡을 시작한 것은 "Feels So Good"이 나온 직후이라고 한다. 당시 여름 동안 긴 순회 연주로 매우 지쳐 있었고, 새로운 음악 활동을 위해 자신의 4중주단을 이미 구성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무척 바쁠 때였다. 그러나 이 영화음악을 위해서는 3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없었고 많은 음악이 필요 했다고한다. 이 사운드 트랙은 24트랙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23½시간용의 음악이 작곡되었으나, 그중에서 서로의 의견을 모아 5시간으로 요약하였다.
Children Of Sanchez는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대표작으로 홀 베트레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앨범 "Children Of Sanchez"는 사운드 트랙의 모든 곡은 물론 더 많은 작품을 담고 있으며 1978년 그래미상을 수상하였고, 골든그로브상의 음악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세계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레코드다.
척크 맨지온은 1940년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출생했으며, 그가 정규적인 음악수업을 받은 것은 열덟살 때 피아노를 통해 재능을 가다듬으면서 부터라고 한다. 2년 후에는 트럼펫을 배우게 되었고 이 악기에 사로잡혀 주로 트럼펫과 함께 신간을 보내었다.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관심속에서 음악을 공부하게된 컥크 맨지온은 그 고마움 때문에 앨범 "벨라비아"에서 그의 부모에게 바치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고등학교 시절은 이스트먼 음악학교에서 트럼펫과 음악사를 전공하였으며, 다른학생 대부분이 대규모 밴드에서 일하는 반면 그는 동생인 피아니스트 갭 맨지온과 함께 5인조 밴드를 구성하였다. 계속해서 대학에서는 음악교육학을 전공하였으며 이때 처음으로 후루겔혼을 배우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로체스터의 한 국민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다가, 뉴욕으로 이사하여 1965년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 참가한 밴드는 아트 블레키의 재즈-메신저즈(Jazz Messengers)이며 2년동안 함께 일하면서 레코딩도 하게 된다. 그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척크 맨지온은 1968년 처음으로 자신의 4인조 밴드를 구성하게 된다. 이름은 이스트먼 재즈 앙상블(Eastman Jazz Ensembl)로써 이스트먼 극장에서의 첫번째 콘서트의 티켓이 매진되는 등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곤트리 재즈 훼스티발에 초청되었으며 유럽으로의 연주여행과 세장의 레코드를 출반하면서 실력을 점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척크 맨지온이 A&M레코드사로 이적한 것은 1975년으로 이때부터 그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되며, 두번째 앨범 "벨라비아(Bellabia)"로 처음으로 그래미상을 받기도 하며, 스티비 원더, 칙 코리아,퀸시 존스 등과 함께 많은 음악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척크 맨지온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건 역시 1977년에 선보인 앨범 "Feels So Good"이다. 이 레코드는 그에게 최초로 플라티늄 레코드를 안겨주었고,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게 한다. 그는 그동안 8개의 앨범을 출반하였고 마지막 앨범인 "Tarantella"에서는 이탈리아의 지진 피해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그는 8시간 동안의 자선공연을 하는 동안, 자신에게 음악을 가르쳐준 디지 길레스피, 칙 코리아 등과 함께 연주 했으며, 연주장에서는 이탈리아의 타란텔라춤을 추면서 음악과 평화를 함께 전하는 음악인 이였던 것이다.
"산체스의 어린이들 (Children Of Sanchez)"은 전형적인 사운드 트랙 앨범이 아닙니다. 이 앨범은 오스카 루이스의 자서전을 홀 벨트레트가 영화화한 것으로 내 자신이 23½시간동안 연주되도록 작곡하여 발췌한 것입니다. 이 작품들을 작곡하고 작사한다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의 삶을 가장 강렬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읍니다. 이 음악들은 내 자신으로부터 나온 가장 강한 작품이며, 이 작품들이 앨범속에 담기게 되어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 Chuck Mangione -
척크 맨지온이 "산체스의 어린이들" 앨범을 위해 작곡을 시작한 것은 "Feels So Good"이 나온 직후이라고 한다. 당시 여름 동안 긴 순회 연주로 매우 지쳐 있었고, 새로운 음악 활동을 위해 자신의 4중주단을 이미 구성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무척 바쁠 때였다. 그러나 이 영화음악을 위해서는 3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없었고 많은 음악이 필요 했다고한다. 이 사운드 트랙은 24트랙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23½시간용의 음악이 작곡되었으나, 그중에서 서로의 의견을 모아 5시간으로 요약하였다.
Children Of Sanchez는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대표작으로 홀 베트레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앨범 "Children Of Sanchez"는 사운드 트랙의 모든 곡은 물론 더 많은 작품을 담고 있으며 1978년 그래미상을 수상하였고, 골든그로브상의 음악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세계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레코드다.
척크 맨지온은 1940년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출생했으며, 그가 정규적인 음악수업을 받은 것은 열덟살 때 피아노를 통해 재능을 가다듬으면서 부터라고 한다. 2년 후에는 트럼펫을 배우게 되었고 이 악기에 사로잡혀 주로 트럼펫과 함께 신간을 보내었다.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관심속에서 음악을 공부하게된 컥크 맨지온은 그 고마움 때문에 앨범 "벨라비아"에서 그의 부모에게 바치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고등학교 시절은 이스트먼 음악학교에서 트럼펫과 음악사를 전공하였으며, 다른학생 대부분이 대규모 밴드에서 일하는 반면 그는 동생인 피아니스트 갭 맨지온과 함께 5인조 밴드를 구성하였다. 계속해서 대학에서는 음악교육학을 전공하였으며 이때 처음으로 후루겔혼을 배우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로체스터의 한 국민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다가, 뉴욕으로 이사하여 1965년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 참가한 밴드는 아트 블레키의 재즈-메신저즈(Jazz Messengers)이며 2년동안 함께 일하면서 레코딩도 하게 된다. 그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척크 맨지온은 1968년 처음으로 자신의 4인조 밴드를 구성하게 된다. 이름은 이스트먼 재즈 앙상블(Eastman Jazz Ensembl)로써 이스트먼 극장에서의 첫번째 콘서트의 티켓이 매진되는 등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곤트리 재즈 훼스티발에 초청되었으며 유럽으로의 연주여행과 세장의 레코드를 출반하면서 실력을 점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척크 맨지온이 A&M레코드사로 이적한 것은 1975년으로 이때부터 그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되며, 두번째 앨범 "벨라비아(Bellabia)"로 처음으로 그래미상을 받기도 하며, 스티비 원더, 칙 코리아,퀸시 존스 등과 함께 많은 음악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척크 맨지온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건 역시 1977년에 선보인 앨범 "Feels So Good"이다. 이 레코드는 그에게 최초로 플라티늄 레코드를 안겨주었고,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게 한다. 그는 그동안 8개의 앨범을 출반하였고 마지막 앨범인 "Tarantella"에서는 이탈리아의 지진 피해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그는 8시간 동안의 자선공연을 하는 동안, 자신에게 음악을 가르쳐준 디지 길레스피, 칙 코리아 등과 함께 연주 했으며, 연주장에서는 이탈리아의 타란텔라춤을 추면서 음악과 평화를 함께 전하는 음악인 이였던 것이다.
Rose
영국 팝 신의 주요한 장점 중의 하나는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어 참신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뮤지션들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있다. 락의 르네상스란 시대의 표현도 실질적으로 팝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70년대 중반에 락 음악의 활성화를 요구하며 영국쪽에서 표출되었던 시대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당시에 출현했던 락큰롤붐들의 음악적인 영향력을 팝음악이 사멸하기 전까지 일종의 산파적인 역활을 수행(?) 할만큼 대단한 것이여서 현재도 많은 팝 그룹이나 매니어들의 가슴에 영원불멸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Rose는 락의 르네상스 시대인 70년대 중반에 출현해서 단 두장의 앨범 " Judgement Day "와 " A Taste of Neptune "을 발매하고 해체된 비운의 그룹이다. 자신들의 출생지인 영국에서 앨범을 발매하지 못하고 캐나다 레코드사에서 레코딩 한 것은 아마도 70년대 중반 수없이 많은 그룹들의 명성에 부합되지 못함도 있겠지만 이들의 음악적인 성향 자체가 미국적인 요소가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훗날 Rose의 명성은 캐나다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무겁고 블루스적인 브리티시 락 경향보다는 미국적인 어쿠스틱한 락 적인 요소가 더욱 강했기 때문으로 분석이 된다.

그리고, 앨범 A Taste Of Neptune의 B면의 세번째수록 곡인 Marie(Where have you gone)은 파스텔조의 애수어린 Brian Allen의 보컬과 후반부 어쿠스틱 피아노와 이어지는 키보드의 애수어린선율이 사람과 이별의 아픔,슬픔을 멜로디로 표출하는 극치를 이루고 있다. 단 2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Brian Allen과 Jim fox가 그룹 Toronto로 이적하면서 해체되는 아쉼을 남겼지만 그들이 발매한 A Taste Of Neptune은 캐나다에선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현재까지도 팝 매니어들의 가슴에 위안과 감동을 안겨주는 명곡으로 남아있다.

Shawn Phi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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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 Phillips은 1943년에 미국의 텍사스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세계 각지에서 살면서 많은 음악적 경험을 한다. 그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1970년대 포크 음악의 붐이 일어났을때 데뷔하게 되는데 포크락, 재즈, 클래식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싱어송라이터로 위의 곡은 그의 앨범중에 Second Contribution (1971)에 수록된 곡이다.
"My music is an attempt to move the inner self, in each individual who listens to it. I've tried to cover the beauty and the ugliness." (내 음악은 내면의 자아를 감동시키기 위해 기획 된다, 그래서 각각 개인은 자기만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음악으로감싸주려고 했다.) - Shawn Philips -
"It's all created for people." (내 음악은 모두, 사람들을 위해 창조되는 것이다) - Shawn Philips -
Second Contribution / Shawn Phillips (1971)
*** SIDE ONE ***
1. She Was Waitin' for Her Mother at the Station In Torino And You Know I Love You Baby But It's Getting Too Heavy To Laugh (4:54)

Second Contribution
2. Keep On (3:21)
3. Sleepwalker (1:32)
4. Song for Mr. C (3:49)
5. The Ballad of Casey Deiss (6:12)
*** SIDE TWO ***
1. Song for Sagittarians (3:43)
2. Lookin' Up Lookin' Down (3:55)
3. Remedial Interruption (1:56)
4. Whaz' Zat (1:56)
5. Schmaltz Waltz (1:44)
6. F Sharp Splendor (Buckmaster)
7. Steel Eyes (4:18)
비틀즈
비틀즈(The Beatles)는 멤버 전원이 영국 리버풀 출신인 락 밴드이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으며, 20여 곡의 미국 차트 1위곡을 포함하여 50여 곡 넘는 톱 40 싱글들을 발표하여, 20세기 최대, 최고의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다. EMI 레코드는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판매된 비틀즈의 음반 수를 10억개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1 비틀즈의 노래는 발라드, 레게, 싸이키델릭, 블루스에서 헤비메탈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데 이는 현대 음악 스타일의 장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의 영향력은 단순한 음악 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의 사회 및 문화적 혁명을 야기하였다. 평론의 갈채를 받았으며 문화적 영향력도 컸다. 따라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음악 그룹으로 여겨지고 있다.
"The Fab Four"라 불리는 비틀즈의 구성원은 존 레논 (John Winston Lennon, 1940-1980), 폴 매카트니 (James Paul McCartney, 1942-),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2001), 링고 스타 (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논과 매카트니는 밴드의 주요 곡들을 작곡했으며,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에 큰 공헌을 했다. 처음 비틀즈가 레코딩을 시작한 이래,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모든 곡 레코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맡아왔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음악적 성장에 있어 중대한 자리를 차지했다.
비틀즈는 1963년 말 영국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비틀즈에 감명 받은 어린 여성들(오빠부대)을 주목할 만 하다. (이 현상은 영국 언론에게 "비틀마니아"(Beatlemania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비틀마니아는 1964년 초에 북미에 상륙했으며, 비틀즈의 인기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소위 "영국의 침략"이라 하여, 비틀즈는 미국의 초기 로큰롤 및 R&B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칼 퍼킨스와 같은백인 음악가들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 레리 윌리엄스와 같은 흑인 음악가 양 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비틀즈 스스로의 작곡은 비틀즈 멤버 자신들이 영웅시하는 음악가들의 양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얼마 후 비틀즈는 그들 특유의 타고난 음악적 악상을 바탕으로 비틀즈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5년동안 그들의 음악은 단순했던 초기 히트곡들(예를 들어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에 비해 예술적인 꾸밈같은 것이 상당히 풍부해졌다.(앨범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Abbey Road에서 처럼.) 그들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스튜디오 레코딩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들은, 전례 없는 퀄리티(질)의 레코딩을 발표하는 모든 곡들에 선보였고, 비틀즈는 동시대 팝 뮤직보다 앞선 효과들을 적용시켰다.
비틀즈는 1970년 공식 해산되었다. 이후 35년 후인 2005년 미국의 연예산업잡지 버라이어티는 비틀즈를 20세기 연예인의 대표 우상(icon)이라 표현하였다.
밴드 맴버
존 레논 : 보컬, 리듬 기타 - 때때로 하모니카, 키보드, 베이스 기타 및 기타 악기 (1960-1970)
폴 매카트니 : 보컬, 베이스 기타 - 때때로 기타, 키보드, 드럼, 프루겔 혼 및 기타 악기 (1960-1970)
조지 해리슨 : 보컬, 리드 기타 - 때때로 시타르, 탐부라, 베이스 기타, 키보드 및 기타 악기 (1960-1970)
링고 스타 : 드럼 - 때때로 보컬, 작은북, 키보드 및 기타 악기 (1962-1970)
초기 맴버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 : 베이스, 보컬 (1960-1961)
피트 베스트(Pete Best) : 드럼 (1960-1962)
+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이였다.
[ 퍼옴 : 위키백과 ]